외면일기

춤추고 노래하는 내 얼굴

sputnik.K 2013. 9. 7. 18:31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허무와 싸워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엔 늘 암묵적 치고받음이 있었다. 허무는 언제나 내가 눈을 뜨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나는 그것이 불편했다. 아침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저 몰골을 마주해야 하다니 매번 곤란하다, 머리를 흔들며 부엌으로 걸어가 쌀을 씻곤 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창 밖의 불 켜진 다른 집 부엌과 거실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그가 보인다. 새벽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선 가만히 쭈그려 앉아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어지간히도 부지런한 상대였다.

 

살아보니, 살아간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감정과 단어들을 매일 마주한다는 것이었다. 그 마주함에도 강약중간약의 강도가 있어 가끔은 그 장단에 맞춰 을 추곤 했는데, 허무는 내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멀뚱하게 구경하다 그냥 사라지곤 했다. 그럼 나는 더 신이나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내가 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 그저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그도 가졌던 것 같춤추고 노래하는 얼굴 앞에서는 구태여 자신을 증명하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