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스물아홉 살에 나는 너를

sputnik.K 2013. 10. 20. 16:49

 

얼마 전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다 문득 엄마는 내 나이에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졌.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다 "스물아홉 살에 나는... 너를 낳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호들갑을 떨었다. 스물아홉 살의 엄마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키웠다니. 김애란 작가는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때,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 졸업할 때, 박수쳐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소설에 썼었다. "자라는 건 놀랍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자라는 모습을에서 지켜보며 적절한 때 박수쳐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내 삶은 내 부모의 시선 속에서 몸피를 불려왔다. 그들의 노동과 감정을 먹으며 하나의 생물체처럼 자라 여기까지 왔다.

 

엄마는 언니가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택배 전문가로 분했다. 택배 박스는 엄마에게 소형 냉장고였다. 웬만한 반찬이며 집에서 만든 고추장, 된장을 포함한 갖은 양념, 쌀, 곡식, 채소, 과일, 간식 등을 일목요연하게 착착착 싸서 보내주곤 했다. 이 전통은 내가 서울에 온 뒤에도 계속 되었고, 남동생이 올라온 뒤에는 더욱 견고해졌다. 언니가 외국에서 일을 하게 되자 엄마의 택배 기술은 국제적으로 그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얼마 전 부모님이 이사를 하고 집에 텃밭이 생긴 뒤로는 텃밭에서 난 채소들이 제철에 맞춰 서울집으로 도착하고 있다. 딩동, 안녕! 난 텃밭 채소야. 

 

언젠가 아빠와 산책을 하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화 말미에 "아빠, 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가족들을 살뜰하게 챙길 수 있을까?" 질문했다. 아빠는 "더 사랑하며 챙길거야."라며 기운을 북돋아줬다. 그렇지만 이제 보니 스물아홉 살에 아이를 낳는 출발선에서부터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내게 "엄마는 내 나이에 뭐했어?"라고 물으면 나는 "처음으로 너에 대해 생각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태어날 너를 생각하며 외할머니의 택배 기술을 미리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