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물색없던 치아

sputnik.K 2013. 10. 20. 17:07

 

책에서 '졸렬한 외양'과 같은 표현을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그 인물은 내게 '교활한 치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현실 속의 치아가 정말 교활하게 생긴 이였다. 그가 한번은 꿈에 나왔다. 꿈 속에서 그의 치열은 이상하리 만큼 평범해 보였다. 처음부터 평범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교활하다 오해했던 것인지, 사실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데 꿈에서만 일순간 그 너비를 넓히고 색을 밝혀 단정해 보인 것인 모르겠다. 그저 일상적인 하나의 입이 나를 향해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했것이 기억난다. 꿈에서 깨자 내용은 없고 움찔움찔 움직이는 입모양만 뇌리에 남아 '역시 유쾌한 사람은 아니군'이라는 인상만 더해졌다.

 

내가 그를 만난 건 그의 치아가 그의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드러내는 치아 이면에 내가 보지 못한 뭔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게 남은 건 그 조밀하고 물색없던 치아들의 잔상이다. 그가 가진 건 그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사실에 가끔 슬퍼진다. 슬퍼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