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재료 신선하고 결과 훌륭하고

sputnik.K 2013. 12. 13. 03:37

 

지난 추석에 다큐 <공감>을 봤다. 브로드웨이의 전설이라 불리는 '윌라 킴'이라는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나왔는데, 9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일을 사랑하며 현장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보며 아름답다는 말이 건강하다는 말과 이음동의어라는 것을 알았다. 윌라 킴은 스스로 "나는 예술가다"라고 말한다. "날 때부터 예술가였다"는 것이 그녀가 수시로 강조한 말이었는데, 나는 그런 자의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의식이 그녀를 정말 예술가로 살게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정의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약간의 지식과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했는데, 96세의 아름다운 여성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브라운관 앞에 앉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고개가 주억거려지던 것이 생각난다. 

 

다큐가 끝난 다음에는 <세상의 모든 부엌>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기억에 남는 건 스웨덴의 부엌이다.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이 나라의 어느 아파트에선 공동부엌을 두고 주민들이 돌아가며 식사 당번을 하고 있었다. 그 중 아기를 안은 33세의 젊은 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집에서 매일 1시간씩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1주일에 5시간, 5주일에 25시간인데, 공동부엌을 통해서는 5주일에 2시간이면 되니 23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부엌에서 그날의 당번들이 모여 함께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먼저 대형 철판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두르고 호박과 당근 등 갖은 야채를 한 입 크기로 썰어 담는다. 그 위에 꿀을 듬뿍 뿌려 오븐에 구워낸 다음 치즈와 허브를 올리는로 마무리한다. 간단하고 부담 없다. 한 달에 2시간을 내는 것만으로 매일 저녁 건강한 식사를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도 공동부엌의 멤버가 되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담백하고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완성되었다.

 

"나는 예술가다"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96세 무대의상 디자이너의 에너지"공동부엌을 통해 한 달에 23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33세 아기 아빠의 합리적 시간 계산법은 어딘지 닮아 있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재료 신선하고 결과 훌륭하고'로 공동부엌에 관심을 보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