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티처
내가 중학교 1학년 첫 영어시험 주관식 성적표를 받고 얻은 교훈이 두 가지가 있는데, 1. 문장이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것. 2. 대문자로 시작해야 하는 문장을 소문자로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은 아무리 완벽한 문법 구조를 갖고 있더라도 틀린 답으로 간주되었고, 소문자로 시작된 문장과 이름은 누가 뭐라 해도 틀린 것이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학생들의 버릇을 들이기로 결심한 이상 달리 항의할 명분이 없었으므로 그 이후로는 문장을 쓸 때 마침표와 대소문자 구분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렇지만 간혹 마침표를 찍어야할 때를 놓친 적도 있었다. 나는 어느 시기에 어떤 사건에 잠시 매몰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정리해야 할 감정을 적절한 때 털어버리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정리를 미루고 있던 감정과 관계와 물건들은 불쑥불쑥 나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결국 나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영어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제서야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던 나의 문장이 왜 오답으로 처리되었는지 온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버릴 때는 온전히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질 때도 온전히 가져야 한다. 결국 영어 선생님은 옳았다.
영어 선생님 하니까 또 한 분이 떠오르는데, 중학교 3학년 때의 영어 선생님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선생님들이 필기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미리 필기체 공부를 해가야 한다고 했다. 역시 고등학교는 만만치 않은 곳이구나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산 크리스마스 카드에 쓰인 Merry Christmas의 글씨체를 그림 그리듯 흉내내본 기억을 제외하면 그때까지 필기체를 써본 일은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필기체 공부를 시작했고 궁극에는 필기체를 잘 알아볼 수 있으면서 잘 쓸 수도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필기체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다. 우리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았다. 어쨌든 나는 Merry Christmas를 그림이 아닌 글씨로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