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얼마 전 한 의료재단의 요양병원에서 새해를 맞아 '2016년 소원'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얼마 뒤 조사담당자는 설문조사 결과를 알려주며 "아무래도 주제를 바꿔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는 조사 대상이었던 어르신들의 소원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자면서 평화롭게 죽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로 주제를 바꿔 다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로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성취감이 컸던 시기를 꼽았다. 가령 회사원으로서 가장 성과를 많이 내거나 육아의 만족감이 가장 컸던 시기였다. 미술심리치료 상담사였던 담당자는 "사람은 원래 지금의 심리상태에 따라 현재와 반대되는 상황을 그리워한다"며 "과거의 행복으로 꼽는 것은 대부분 현재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노인들은 옛날 이야기를 하거나 어린시절 회상을 좋아한다. 평소 말수가 없던 노인들도 미술치료 시간에 어린시절 감나무가 있던 마당을 표현하는 작업 등을 하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는다. 담당자는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자극에 무디다고 생각하는데 자기회복능력은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더 크다"며 "그들은 작은 자극에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때문에 본인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기회라는 단어는 노년기에도 여전한 무게의 추를 갖는다. 전 생애에 걸쳐 그 무게는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들은 자극에 무디지 않다. 언젠가 나의 부모 역시 어떤 기회가 필요할 것이고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올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