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누군가 여기 오고 있는 사이

sputnik.K 2016. 12. 11. 16:44

  

수영을 하고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 들렀다. 언니가 부탁한 원두를 사고 콘파냐를 한 잔 시켰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산들거린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날씨가 좋으니 같이 차를 마시자고 했다. 통화가 끝난 뒤 노트를 꺼내 오늘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썼다. '날씨가 좋고 확신을 가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이 좋다'라고도 쓴다.

 

수영은 올해 6월부터 시작했다. 중학교 때도 수영을 배우러 다녔지만 그때 배운 수영법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공간에 고인 물을 무서워했다. 그런 물 속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자주 횡설수설이었다. 하지만 수영을 배우면서 비로소 그 두려움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게 됐다. 이제는 평형도 할 줄 안다. 

 

수영장에는 대개 퇴근 후에 간다. 몸의 긴장을 풀고 물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 좋다. 애쓰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는 감각들. 나는 늘 하고 싶었던 '고개 내밀고 수영하기'도 곧잘 하게 됐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제 물에 빠져도 숨을 쉬면서 뭍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법은 고개를 내민 수영법이 아니라 고개를 물 속 깊숙이 넣고 움직이는 잠수영법이다. 잠영을 할 때는 폐 가득 들숨을 채워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숨을 간직한 상태로 고요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고요의 요정이 나타난다. 고요의 요정은 지루했던 기분을 바꿔주거나 머릿속을 떠다니던 단어나 사건들을 끄집어내 간다. 요정이 가져간 일들은 순서를 찾아 다시 내게 흘러들거나 그대로 영영 물 속에 잠겨버린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내가 알던 형태는 아니다. 그 일에 나는 관여할 수 없다. 그건 그것대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