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뒤에 뭐가 있었는가 하면
올해는 소속을 두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일의 규모를 직접 선택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 삶의 질이 더 높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자유라니 어쩐지 시원한 박하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곳저곳의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시간을 보다 편하게 썼으며 그 시간의 끝에 밀착 돼 파도처럼 밀려드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마주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빼곡한 마감들을 넘으며 어떻게든 성실히 헤엄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열심히라는 감각이 지금도 손끝까지 배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감각은 때로는 절박하게 때로는 즐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1년을 지내자 속박감과 함께 어딘가 붙어 있던 안정감이 같이 떨어져 나갔다. 홀가분했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구속이 옅어지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대신 사진을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일하는 틈틈이 책상에 앉아 누군가가 찍어낸 풍경과 정물을 찾아봤다. 빛과 그림자 사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였다. 내가 좋아하게 된 사진작가는 사진과 함께 아주 가끔 마감의 압박과 체력에 대한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비명의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럼에도 시선을 잃지 않고 완성된 결과물에서는 어떤 단단함과 위로가 전해졌다.
내가 지난 1년의 시간을 잘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요령이 부족했던 탓에 자주 마음이 조급해져 몸을 축냈다. 엇박이 생기는 달의 후유증은 꽤 오래갔고 리듬을 잘 타는 달의 만족감은 금방 지나갔다. 어릴 때 전래동화 만화시리즈 '배추도사 무도사'에서 봤던 동굴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우연히 동굴 속에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자 그곳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꽃밭과 멋진 버들도령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아마 동굴 속의 문을 여는 기분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연 문 뒤에도 꽃밭과 버들도령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꽃밭이 아닌 것과 버들도령과 동떨어진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원래 있던 장소와 비슷하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데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은데 다르다. 말장난 같은 그 시간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한 뼘 정도 자라고 무언가는 한 뼘 정도 누그러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