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매일이 좋은 날

sputnik.K 2019. 1. 24. 01:33

 

영화 <일일시호일>을 봤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란 뜻이다. 영화는 차를 달여 마실 때의 예법인 다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다도를 배우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변덕스럽기만 한 일상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본 대로 정리해 보면, 다도에서는 형식이 중요하다. 형식을 먼저 배우고 난 뒤 형식에 마음을 담는 것이 다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다도를 처음 배우는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의미를 묻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의미를 찾기보다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선생님은 그저 "말차를 저을 때는 반달이 보일 만큼만 저어라"고 말하고 "무거운 건 가벼운 듯 들고, 가벼운 건 무거운 듯 들라"고만 말한다. 의미는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고. 


우리는 의미를 찾다가 중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일단 하면 의미란 저절로 따라붙는다. 직접 느껴지는 것이 없더라도 행동하고 쓰여짐으로써 이미 뜻은 발생한 것이다. 영화에는 12년에 한 번씩 사용되는 다기가 등장한다. 예컨대 돼지 모양의 잔은 12년에 한 번 돼지의 해에만 사용한다. 돼지잔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12년을 기다려야 하고, 다시 말해 돼지잔은 평생 대여섯번만 쓰여진다. 세상에는 12년에 한 번 내어짐으로써 의미를 완성하는 물건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