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sputnik.K 2019. 6. 30. 00:21

 

초등학생 때 잠시 웅변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던 내가 웅변을 배우면 일부분 활발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연단에 서서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를 목구멍 밖으로 겨우 끄집어내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다행히 요령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손을 반대편 가슴 위에 올린 후 왼손을 들며 '이 연사' 오른손을 들며 '힘차게' 양손을 한 번 더 쳐들며 '외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령을 알고 있다고 해서 연단에 서서 주목 받는 것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크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힘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다. 질문에는 짧게 답하고 생활 속 동작도 크지 않았다.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집에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곧잘 말했다. 좋고 싫은 것에 대한 의사 표현도 명확했다. 엄마는 "언니가 학교에서 상을 받으면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알 수 있었어. 골목에서부터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뛰어오거든. 자기 상 받았다고." 그에 비하면 나는 상을 받든 알림장 메모가 있든 그냥 가방에 넣어두고 집에 오면 그저 조용히 있는 편이었다. 방에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고 식탁에서 밥을 폭폭 떠먹는 정도가 다였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큰 소리 치는 큰 딸만 보다가 먼지처럼 부유하며 지내는 작은 딸을 보니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내게 "너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라고 했지만 그때의 내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조용하게 할 말도 없던 내게 힘차게 외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웅변학원에 오래 다니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기뻤고 엄마는 아쉬워하는 듯 했다. 조용한 아이는 조용히 입구로 들어가 조용히 출구로 나왔다. 나는 연사가 되고 싶지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말하고 수선스럽지 않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