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 옹달샘의 순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몸풀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그것을 '깊은 산 속 옹달샘'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중학교 음악시간, 선생님은 수업이 시작되면 예외 없이 '깊은 산 속 옹달샘'을 큰 소리로 부르게 했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를 첫 구절로 반 아이들은 생목으로 노래 한 곡을 완창했다. 목을 풀어주는 워밍업 작업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피아노로 그 곡의 반주를 시작하면 '아, 음악시간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음악시간의 인트로인 셈이었다.
그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자 학교생활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선생님은 조례시간마다 반 아이들에게 스트레칭을 시켰다. 양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게 하고, 목을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리게 하고, 의자의 등목을 잡고 허리를 비틀게 했다. 가끔은 스트레칭만 부지런히 하다가 조례시간이 끝날 때도 있었다. 여러모로 워밍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인 것 같다. 덕분에 스트레칭이 끝나고 나면 '아,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인트로 의식은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음악시간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이상하게 '깊은 산 속 옹달샘'을 부르고 나면 내가 가진 흥미 이상으로 음악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노래를 다 부른 이상 음악시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목을 푸는 과정이 아닌 '자, 빠져든다, 너는 음악시간으로 빠져든다' 하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을 먹는 것은 토끼도 노루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