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어젯밤 책 읽는 시간은 특별했다. 책과 나 사이에 방해 요소가 전혀 없었다. 배고픔, 메시지, 사념을 부르는 창밖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저 스탠드 불빛과 책과 나 이렇게 셋만 있었다. 밀착감 속에서 몇 주째 밤에만 아껴 읽던 책을 완독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2년 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사놓았던 책이다. 어쩐지 그때 읽고 싶어서 사놓고는 책장에만 꽂아두다 올해 들어서야 꺼내들었다.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은 옳았다.
밤에 이 책을 꺼내 펼치면 나는 금세 소란스런 서울을 떠나 고요한 기타아사마의 아오쿠리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인공이 지내는 여름별장에서 차분하고 성실한 인물들과 함께 연필심을 깎고 갓 구운 스콘을 먹고 창밖의 눈보라를 구경하며 숯에 불을 붙인다. 두부 샐러드와 얇은 간장 센베도 함께 먹는다. '불합리한 명령도 헛수고가 될 잡일도 없는' 건축 사무소에서 무라이 슌스케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하는 말 "여기 있는 동안 많이 공부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주세요"라는 말에 괜히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건축과 가구, 요리와 생활, 꽃과 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과장된 기분이나 얽힌 생각 없이 잠에 들 수 있었다.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은 그들의 말 사이에 가름끈을 끼워 넣고 조용히 스탠드를 끈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