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뜻밖의 식탁

sputnik.K 2019. 7. 28. 22:31

 

 

 

 

독립을 실감나게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내 이름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 공과금을 매달 직접 내는 것, 욕실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것, 생필품의 여분을 확인하고 빈 곳을 채우는 것, 냉장고를 정리하고 요리를 하는 것 등이 떠오른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내가 나를 먹여 살리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특히 부엌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면서 나의 독립심은 무럭무럭 커나갔다. 처음 찌개를 끓일 때 멸치는 몇 마리씩 넣어야 하느냐고 집요하게 묻던 시절을 지나 멸치를 한 주먹씩 털어넣고 간도 감으로 맞출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나는 냉장고를 무엇으로 채울지, 식탁은 어떤 분위기로 차릴지, 선반은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접시와 컵과 포크 등 집기류에 대한 애정도 생겨났다. 전혀 모르던 세계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기분을 간지럽게 했다.

 

부엌에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과 기분 나쁘게 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농부마켓이나 유기농 코너에서 구입한 신선한 재료들은 나를 설레게 했고, 통조림 음식은 왠지 기운을 빠지게 했다. 포장이 과한 음식을 먹을 때는 자주 죄책감이 느껴졌는데, 식탁에 차려진 음식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올 때는 뭔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식탁은 뜻밖의 장소였다. 식탁은 내 감정 상태가 드러나는 곳이었고 더 나은 상태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더 건강하고 자제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나와 유혹에 약하고 자기타협에 능수능란한 내가 자주 마주 앉아 겸상을 했다. 둘은 조용한 힘겨루기를 한다. 고요하고 복잡한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길을 내기에는 역시 식탁만한 장소가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