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달팽이 사건의 전말

sputnik.K 2019. 10. 1. 23:54

 

 

 

 

지금까지 달팽이를 키워본 적이 두 번 있다. 그 중 한 번은 달팽이의 탄생을, 또 한 번은 달팽이의 죽음을 목격했다. 달팽이의 탄생편은 어른들이 배추를 다듬으면서 시작됐다. 배춧잎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달팽이 몇 마리가 내게 건네졌고 나는 투명한 통에 흙을 채우고 그들을 넣어 키웠다. 과학앨범 <달팽이>를 읽으며 흙의 습도와 먹이 조절에 열심히 공을 들였다. 달팽이들은 당근을 주면 주황색 똥을, 오이나 상추를 주면 초록색 똥을 눴다. 그러던 어느 날, 벽 너머 흙 속으로 작고 하얀 알들이 뭉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과학앨범을 더욱 맹렬하게 읽었다. 얼마 후 새끼들이 태어났다. 작고 투명한 아기 달팽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등에 회오리 모양의 집을 이고 있었다. 역시 작고 투명했다. 새끼들은 많았고 내가 만들어 준 집은 작았다. 나는 달팽이 가족을 모두 화단에 풀어줬다. 잠깐 사이에 새끼들이 태어나는 모습까지 보다니,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달팽이의 죽음편은 학교에서 발견한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시작됐다. 비극의 서막이었다. 달팽이를 데려온 날이 토요일 점심시간이었고 화창한 날씨였던 것까지 기억나는 걸 보니 확실히 비극적인 일은 뇌리에 더 구체적으로 남는 것 같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통에 달팽이를 넣고 오이와 당근을 식사로 넣어줬다. 나름 맛있게 즐기는 것 같길래 통을 신발장 위에 올려두고 나도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보니 달팽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임시거처라 아직 지붕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탓이다. 당황스러워하며 신발장을 어지럽게 오가는데 순간 발 아래로 뭔가 밟히는 느낌이 났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했다. 달팽이 실종사건이 사망사건으로 치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맨발에 전해지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를 지르며 오열하는 것 뿐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난 뒤 아빠가 대신 감싸준 사체를 집 앞에 묻고 장례를 치러줬다. 가슴 아프고 후회가 사무쳤다. 그 뒤로는 달팽이를 키운 일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