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천천히 하는 샤워

sputnik.K 2019. 11. 22. 10:05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따뜻한 물에 오래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몸만 씻는 게 아니라 마음도 씻기는 것 같다. 어디선가 우울은 수용성이라 샤워를 하면 어느 정도 씻겨 내려 간다는 글을 읽었는데 확실히 감정과 생각 전환에 샤워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샤워를 하면 우리의 뇌파는 세타 상태에 들어간다고 한다. 세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창의적인 생각이 전개되는 영역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달으며 유레카를 외친 장소도 목욕탕인 것을 생각하면 샤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나는 샤워를 오래 하는 편인데 빨리 하려고 노력해도 다른 사람에 비해 늘 조금 더 걸린다. 샤워를 쫓기 듯 하는 상태가 되면 마음이 되레 어지러워져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면 아예 빨리 하거나 마지막에 하는 식으로 시간을 확보한다. 샤워는 하고 싶은 만큼 느긋하게 하는 것이 좋다. 거품을 내서 몸을 닦고 따뜻한 물로 꼼꼼하게 씻다 보면 뾰족했던 세포들이 한결 너그러워져 있다. 샤워 후에는 뭘 해도 좋은데 저녁이라면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피곤함으로 돌돌 말려 있던 몸이 한낮에 햇빛이라도 받은 듯 바슬바슬 펴지고 하염없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