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행방불명된 엽서

sputnik.K 2019. 12. 26. 19:17

 

 

 

 

올해를 돌아보면 아쉬운 일이 한 가지 있다. 이사를 하면서 언니가 노르웨이에서 보낸 엽서를 잃어버린 것이다. 정확히는 받지 못했다. 가진 적이 없으니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속에 남은 공허함만은 잃어버린 자의 것이므로 나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사 직후 엽서가 바다를 건너 나에게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니는 리가, 스톡홀름, 오슬로에서 지금까지 보낸 엽서 중 가장 예쁜 엽서들을 골라 보냈다고 했다. "삐삐의 나라 알지? 거기서도 보냈어." 삐삐의 나라에서 오는 엽서라니. 그 귀엽고 설레는 단어들의 조합에 내 마음은 풍선을 매단 듯 두둥실 떠올랐다. 얼마 뒤 옛 집으로 엽서를 찾으러 갔다. 우편함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집주인에게 우편물에 대해 물어봤지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역 우체국에 가서 혹시 반송된 엽서가 있는지 물어봤다. 없었다. 부동산에도 들러 엽서의 행방을 물었다.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엽서는 행방불명 되었다.

 

언니는 여행지에서 자주 내게 엽서를 써서 보내주곤 했다. 그 엽서를 우편함에서 발견해 내 방까지 가져와 아껴 읽는 시간을 좋아했다. 덕분에 집에는 세계 곳곳의 발신 도장이 찍힌 엽서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다. 가끔씩 침대에 엎드려 엽서들을 나열해놓고 그림과 글을 다시 찬찬히 본다. 뉴욕에서 보낸 한 엽서에는 타자기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다. 우리 집에 있는 타자기와 닮아 있다. 언니는 엽서 뒷면에 타자기를 보며 내 생각이 났다고 썼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여행했던 뉴욕의 어느 날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젠가 또 그때처럼 여행하자"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한 음절씩 읽어보곤 한다. 따뜻하고 든든해진다. 언니가 이번에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하다. 분명 힘을 주는 말과 따뜻함을 나누는 그림을 보냈을 것이다. 엽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엽서에 대해 상상만 한다. 본 적 없는 대상에 대한 상상에는 한계가 없다. 그 열렬하고 무구한 상상을 내가 가진 엽서들 사이에 살짝 끼워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