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그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다. 공연 중 이병우 씨는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하네요"라고 말했고, 객석에선 "아!" 하는 외마디 탄성들이 흩어져 나왔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놀랄 만큼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어떤 시선에도 괘념치 않겠다는 듯이. 무엇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장화, 홍련>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불현듯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왜 이리도 슬픈 것이냐. 나는 이제는 남아있지 않은 옛 감정들을 되새김질해 그 말의 질감을 느끼려 들고 있었다. 작정하고 그러려고 하니 어딘가 몹시도 충실하게 고여있었을 그리움이 비져나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삶은 순간의 합이라고 했던가. 그 속에서 내가 뒤로 미룬 것들은 형체를 잃은 채 기억에서 상실되어 갔다. 나중이라는 건 삶에는 통용되지 않는 단어다. 순간은 순간이 되고 또 다른 순간이 되어 그 덩어리로 삶에 붙는다. 어쩌자고 이런 합인가.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으로 기억되는 모든 순간들은 언제나 슬펐다.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사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옷자락에 슬며시 붙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어귀의 풍경은 어느 잡지에서 '겨울 밤'이라는 제목으로 본 듯한 모습으로 내 시간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고즈넉한. 사락눈이 나리는. 가로등 아래 빛나는. 얇게 쌓여나가는 눈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이다. 어젯밤의 풍경은 기억에 외따로 박히고 집에서는 백분토론을 연상시키는 한 바탕의 난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순간이 더해졌다. 그런데 말이다. 그 어리석음에도 이런 날이라니. 이런 날이라니. 돌이킬 수 없는 것들조차 켜켜이 쌓여 이런 날의 정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