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옥상독서의 시간

sputnik.K 2020. 3. 2. 13:27

 

얼마 전 섬진강 나들이를 계획하고 부모님 댁에 내려왔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집 앞 산책도 꺼려져 외출 없이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간단하게 흘러간다. 일찍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일찍 일어난다. 눈을 뜨면 주섬주섬 매트를 펼쳐 요가를 하고 차를 마시고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해가 높이 뜨는 한낮이 되면 책과 챙이 넓은 모자를 챙겨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평상에 앉거나 옥상을 천천히 걸으며 책을 읽는다.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 옥상에서 말리고 있는 무말랭이를 집어 먹는 일을 병행한다.

 

나의 옥상독서의 풍미를 높여주고 있는 무말랭이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이 절반씩 들어간 핸드메이드 식품이다. 엄마가 무를 손가락만한 크기로 굵직하게 썰어 바구니에 담아 주면 아빠가 옥상으로 가져가 깨끗한 돗자리 위에 고르게 펼쳐 말린다. 무는 햇빛과 바람에 수분이 증발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이름에 꼭 걸맞은 말랭이의 형태를 갖춰간다. 아빠는 무가 고르게 마를 수 있도록 하루에 한두 번 옥상에 올라가 무를 휘휘 저어주는데 꼭 나의 옥상독서 시간에 맞춰 와서 "먹어 볼래?"라고 물으며 내 대답과는 상관 없이 말라가는 무를 한 주먹씩 쥐어준다. 아빠 몫의 무말랭이도 한 주먹 쥐어 내려간다. 말랭이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몸피가 줄어서가 아니라 우리 부녀가 매일 같이 치밀하게 기미를 보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똑같아"라며 무말랭이가 줄어드는 일을 괘념치 않는다. 이러다가 무말랭이가 다 마르기도 전에 모두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건 나 혼자 뿐인 것 같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부모님 집의 옥상은 그저 따뜻하고 아늑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랬나요? 그게 그렇게 되어 버렸나요?'라는 마음이 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곳은 이제 무말랭이를 말리는 곳이자 내 마음을 바삭하게 말리는 장소가 되어간다. 따스한 태양과 살랑이는 바람, 최선의 간식을 건네주는 온기 있는 손길, 바시락 넘어가는 책장 소리, 그 모든 걸 기다리는 은근함 속에 있다 보면 겨울 내내 맺혀 있던 마음의 습기가 어느새 증발하고 있음을 느낀다. 옥상독서 시간이 끝나면 마음이 보송보송해져 있다. 시국은 우울하지만 위로가 되는 시간은 어디에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