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조바의 삶

sputnik.K 2020. 8. 27. 23:35

 

 

 

 

며칠 전 조카가 100일을 맞았다. 조카는 요즘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시간이 날 때마다 보러 가는 것으로는 부족해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되도록 옆에 딱 붙어 있으려고 한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조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친구는 조카의 안부를 물으며 "너도 조바하겠네"라고 말했다. 나는 "너도 좋아하겠네"의 오타인줄 알고 그렇다고, 조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좋다고 말했다. 대화의 말미에 친구가 보낸 "조바도 쉬어", "조바 안녕" 등의 표현을 통해 나는 그것이 하나의 명사임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조카 바보'의 줄임말이었다. 그런데 조바에는 또 다른 뜻도 있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조바'를 검색하면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잔심부름 해 주는 아이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나는 그것 역시 요즘의 나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아기와 관련한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그 중 몇몇 잔잔한 일은 행복에 겨운 이모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형제 중 둘째로 어렸을 때부터 언니의 잔심부름에 익숙하게 자라왔다. 꽤 유순한 편이었기에 대부분의 심부름에 순순하게 응했다. 그러나 점차 사고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부당하게 생각되는 일들에는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시켜지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키는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조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다시 유순해져서는 되도록 눈을 내리깔고 필요해 보이는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다해 하고 있다. 조(카)바(보)가 되고 나니 또 다른 조바의 삶이 한 몸처럼 따라 온 것이다. 나는 조바로서 작은 등불 하나를 켜두고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낸다. '딸랑딸랑, 이모가 필요해요'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언제라도 달려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