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계절이 지나는 사이
마스크에 의지했던 한 해가 지나갔다. 잘 해보고 싶은 일을 잘 해보기 위해 힘을 냈던 시간이 그 속에 있다. 올해 내 다이어리에는 한갓진 봄과 여름의 공백과 수북한 글씨를 껴안고 있는 가을과 겨울이 있다. 나는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쉬고 하고 싶을 때 최선을 다해 일하자는 주의인데 올해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했다.
두 가지를 다 하는 틈틈이 일부러 좋아하는 동네를 향해 자주 움직이곤 했다. 최근에는 그 길 위에서 은행나무가 초록빛에서 황금빛을 더해가다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까지 온전하게 바라봤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노란 잎 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날씨가 눈이 부시네. 바람이 시원하네. 잎이 떨어지네. 계절은 여전히 아름답네. 풍경을 뒤로 하고 책상 앞에 돌아와 할 일을 타닥타닥 할 때에도 머릿속에서는 한 줄기 바람이 불고 단풍이 한 잎씩 떨어졌다.
누구는 나무가 잎새를 떨어뜨리면 마음이 스산해진다던데 나는 떨어지는 잎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몸을 가볍게 만든 나무가 드디어 안식에 들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겨울 빛에 몸을 녹이고 낙엽에 발을 데운 뒤에야 봄이 찾아올 테니까. 여름 뒤에 가을, 가을 뒤에 겨울, 겨울 뒤에 봄은 언제나 더 좋은 법이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그 다음이 더 좋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잘 됐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다. 누구도 설득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다음만으로 오롯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매 계절을 통해 배운다. 올해도 그렇게 네 계절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