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존재방식
며칠 전 "일하면서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행복하기에는 너무 바빴으므로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부할 게 많다고 답했다. 나는 일하면서 꼭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말은 자주 상황을 납작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행복하다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내 안에 자욱한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일하면서 나는 때때로 즐겁고 때때로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매번 생각을 다 드러내며 길게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기에 그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어 하나에도 서로 다른 무게와 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그 만큼 많은 대답과 예시가 존재한다. 나는 각자의 선택과 존재방식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00명이 살고 있다면 100개의 대답이 이해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이곳에는 필요하다고.
들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정형화된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경우의 수를 하나씩 다르게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관찰하며 조심스레 한 걸음씩 옮기는 사람이 있고 직관에 의지해 보폭을 넓히는 사람이 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럼에도 의심하고 다른 용기를 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누구도 따분하지 않고 어떤 인생도 당연하지 않다. 그저 각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것에 갖고 있는 힘을 더 실을 뿐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생에 있는 기쁨과 슬픔은 짐작만 할 뿐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모두가 다르고 무엇도 이상할 게 없다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