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까만 고양이와 까마귀
sputnik.K
2021. 9. 20. 23:50
까만 고양이를 보았다. 부드럽고 윤이 나는 짧은 털을 가진 작고 까만 고양이. 이제 막 자기가 속한 세상을 걷기 시작한 듯 보이는 걸음걸이는 조카를 떠올리게 했다. 낯설지만 충분히 씩씩하다. 고양이는 부산의 한 바닷가 작은 책방에 살고 있다. 가만 있으면 파도소리와 소란스런 인파가 만드는 작은 소음이 귓바퀴를 타고 들어오는 곳이다.
그 하늘 위로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날아갔다. 까마귀는 불길한 존재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까마귀가 불길한 건 아니었다. 지붕 꼭대기나 안테나 모서리에 서서 우는 까마귀가 불길했다. 20년 전 그런 까마귀를 보았던 날 학교에서 두발 단속으로 까만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나는 그것이 그날 아침 안테나 위에서 울던 까마귀를 본 탓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날에는 그런 까마귀를 보고 우산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침내 내게도 징크스라는 것이 생겼구나. 그 다음부터는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서둘러 눈을 애먼 곳에 둔다. 날카로운 곳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분도 조금씩 옅어졌지만 여전히 까마귀가 울면 높은 곳은 쳐다보지 않는다. 날고 있는 까마귀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징크스란 그런 한 끗 차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