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죽을 비교 프레임
사람들은 가끔(어쩌면 자주) 자신의 문제를 비교 프레임에 넣음으로써 위로점을 찾는다. 그래서 비교 프레임은 자위든 자학이든 둘 중 하나를 낳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저 사람은 저렇게 멋있는데 난 왜 이럴까"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난 행복하다!"라는 결론으로 도달하는 프레임이 더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늘만 해도 저 사람 봐라, 저런 환경에서도 저렇게 사는데 나는 이런 깨끗한 환경에서 행복하지 않니?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글 하나를 보고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건 마치 배곯아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연민으로 눈물만 잔뜩 흘리다가 시계를 슬쩍 보고는 '불쌍도 해라' 내뱉으며 제 갈 길 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다.
예전에 『모순』이라는 책에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 뿐"이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그것이 인간이다"라는 말도 함께 읽었다. 그것은 명백한 환승오류다.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만 위로될 수 있다니, 끔찍하지 않은가. 위로라는 것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이 우리 동네 지하철 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제과점에서 슈크림 빵을 사먹으며 받는 산뜻한 위로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슬픔이 달래지지 않으면 그곳을 나와 근처의 불 켜진 카페에 들어가 요거트 스무디를 먹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위로도 있지 않나. 비교 프레임은 어쩐지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방해가 되는 것 같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