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목민의 삶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사랑해왔다. '인터넷만 있다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으니까. 자유를 등에 업고 노트북 하나만 가볍게 품에 안고 장소의 구애 없이 단출하게 일하는 날들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디지털 유목민에게 ‘인터넷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대한 불안이 시작된 건 어젯밤부터였다. 갑자기 노트북 화면에서 와이파이 연결 표시가 사라지고 네트워크 자리에 빨간 엑스표만 덩그러니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나 자고 일어나도 붉은 단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메일 확인도 할 수 없고 써놓은 글을 업로드할 수도 없었다. 두 손은 무기력해졌고 가슴에는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서둘러 서비스 센터를 찾아갔다. 기사님이 말한 바를 요약하면, 내 노트북은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다, 노후화된 장기를 바꿔야 한다, 네트워크 단자의 교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독 교체는 어렵고 회로 전체를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비용과 시간이 무척 많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부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실까요? 머릿속에서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른다. 다행히 해결책은 있었다. USB 무선랜카드를 사서 연결해서 쓰면 됩니다. 새들의 날갯짓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아이피타임을 사서 소중하게 안고 돌아왔다. 머릿속 새들은 이제 전선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새들이 구구거린다. 아시겠죠? 구구, 디지털 유목민은요, 구구, 인터넷 없이는, 구구, 반나절도, 구구, 살 수 없었던 거예요, 구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