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멋진 여성들
중학생 때 우리 학교에는 '빨간스타킹'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월화수목금토 날이 바뀔 때마다 빨주노초파남색의 스타킹을 바꿔 신고 다녔다. 보라색은 어디갔냐고?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그의 무지개색 마음을 다 채우기에는 하루가 부족했다. 아이들은 그 선생님이 오면 "빨간스타킹이 온다!"라고 했고 가끔은 그 앞에 '공포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공포의 빨간스타킹이다!"
선생님은 화려한 스타킹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허리가 잘록 들어갔다가 다시 나팔처럼 퍼지는 원피스나 투피스, 하이힐 또는 굽 높은 슬리퍼, 한올한올 잘 말린 헤어스타일을 기본값으로 장착하고 다녔다. 특히 정수리 부근에서 갓 구운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고동의 창자처럼 고불대며 떨어지던 머리칼은 마치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이라도 건네는 것 같았다. 너희들, 이렇게 정성스럽고 당당하게 살거라, 탱글한 회복탄력성은 기본이란다. 선명하고 화려한 립과 아이 메이크업은 그러한 태도에 붙은 당연한 덤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사자머리' 음악 선생님과 절친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는 사이였다. 사자머리 선생님은 중3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는데 헤어스타일에 있어서는 어디에서도 밀리지 않는 분이었다. 과감하게 층을 낸 머리카락 아래로 흡사 사자 꼬리를 연상케 하는 꽁지머리를 시크하게 묶고 다녔다. 그러니까 두 선생님은 멋을 머리에 이고 서로에게 당당하게 힘겨루기가 가능한 유일한 상대였다.
사자머리와 빨간스타킹은 미혼이었다. 스스로를 가꾸고 돌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그들은 쑥덕거림이 많은 학교라는 공간에는 과분할 정도로 멋진 여성들이었다. 도시락을 싸서 예쁜 가방에 넣어 다니던 그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입기 위해서 몸매를 관리하고 건강한 라이프를 위해서 식단과 돈을 관리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스타킹을 골라 신고 꽁지 머리를 단단하게 묶고선 당당하게 교문을 통과한다. 멋지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 전 언니에게 들려주니 역시 동감의 감탄사가 들려온다. "진짜 멋진 여성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