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애매하고 모호한
sputnik.K
2023. 7. 18. 18:49
세상은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추상적이라 나는 자주 말을 아끼게 된다. 문장으로 명확하게 상황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내 이해를 신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설명은 곧잘 시간을 삭제하고 공간을 접어 아무렇지도 않게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는 오늘도 명치 언저리에 회색 감정이 덩어리째 걸려있는 것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곳에 얹혀 있는지 언어화하지 못한다. 그저 한 발로 서 있는 것처럼 가끔 기우뚱 할 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런 것이다. 오늘 피부과에 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하고 연고를 처방 받았다는 것. 환자들을 밖에 두고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는 것. 병원에 휴대전화를 두고 왔지만 약국에서 알아차리고 다시 찾아왔다는 것. 내 단골 카페는 이제 월요일뿐만 아니라 화요일에도 쉰다는 것. 굳게 닫힌 카페 문을 뒤로 하고 근처 카레집에 갔는데 평소 북적이던 가게가 어쩐일인지 한산해 대기 없이 시금치 카레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별 것인 일과 별 것 아닌 감정이 뒤섞인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는 것.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로 지금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