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긋다

그림 같은 존재들

sputnik.K 2023. 10. 5. 15:34

 

 

 

 

여행지의 해먹에 누워 전영애 선생님이 쓴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읽고 있다. “글로 쓴 그림, 그것이 예로부터 시 아닌가요.”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은 말들을 괴테가 했고 작가가 이를 옮기며 개인의 사유를 덧붙인다. 그 덧붙은 말의 여운이 괴테의 말만큼이나 크게 울려 여행지에서 나는 자주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이곳에서 나는 글로 쓰고 싶은 그림 같은 존재들과 자주 마주친다. 회색도마뱀, 대왕달팽이, 보라색꽃, 흰구름, 파란하늘, 푸른 파도소리, 단단한 야자수 열매, 야외 수영장, 뜨거운 햇살, 수영하는 사람들. 여행의 첫 날 마주했던 북쪽 호숫가도 떠오른다. 물가에 나란히 줄지어 있던 색색의 건물들과 물안에서 색이 뭉개져 일렁이던 그림자들. 실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움직이는 그림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입에 넣으면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