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그건 관념일 뿐이야
sputnik.K
2012. 8. 2. 08:43
내가 어떤 상태(대개는 기분)에 깊이 사로잡혀 있을 때 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관념일 뿐이야."
그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개인의 주석 같은 것이다. 나는 기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영화 <철의 여인> 속 대처의 말이 떠오른다. 노부인이 된 대처에게 정신과 의사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요즘 사람들의 문제는 기분이 어떠냐는 것을 중시하고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내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기분이 어떤지도 내겐 몹시 중요하다. 아이러니다. 가령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라는 이유가 어떤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일요일 오후 청소를 앞두고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침대에 누워 버리거나, 누군가 만나러 가기 전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라며 약속을 취소하거나, 마감을 앞두고 원고를 쓰다가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하며 모니터를 끄고 음악을 트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럴 기분'은 썩 좋은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어떤 종류의 기분은 사람의 움직임에 그림자처럼 따라붙기도 하는데 말썽이 생기는 건 그런 때다. 시간 감각이 늘어나고 삶은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때는 일종의 자극이 필요하다. 가령 "그건 관념일 뿐이야."라는 말도 괜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