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오른다는 건
우리 집 텃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자란다. 가지, 오이, 고추, 배추, 부추, 파, 무우, 호박, 케일, 고구마 등등과 처음부터 그 집에 있었던 감나무와 앵두나무에서도 열매가 열린다. 오늘은 아침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텃밭의 고추를 따다 함께 먹었는데 너무 매웠다. 그러자 엄마가 금방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따다가 씻어줬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맵지는 않았다. 엄마 말이 고추라는 것이 원래 이제 막 열렸을 때는 하나도 맵지 않은데, 나중에 햇빛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약이 바짝 올라 매워진다는 것이다. 갓 열린 고추는 정말 전혀 맵지 않았다. 그런데 밍밍한 것이 아무런 맛도 없었다. 그러니 매워도 약이 오른 쪽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삼겹살을 먹으면서는 <팅커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팅커벨은 고장난 것을 고치는 데 재주가 있는 요정이다. 팅커벨이 있는 요정나라에서는 봄을 만들어 네버랜드로 배달해주는데, 어느 날 팅커벨의 실수로 준비하던 것들이 모두 망가진다. 긴급 회의가 소집되고 봄을 늦춰야겠다는 결정이 내려지려던 찰나, 팅커벨의 기지로 위기는 무사히 넘어가고 요정들은 네버랜드로 봄을 배달하러 떠난다. 이때 팅커벨이 요정나라에 떨어져 있던 고장난 오르골을 고쳐서 함께 가지고 가 어느 여자아이의 방 창문 앞에 놓아두는데, 여기가 바로 웬디의 집이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고장나고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면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요정을 생각하세요"라는 나레이션이 함께한다. 훈훈한 애니메이션이다.
약이 오른 고추를 먹으며 봄을 배달해주는 요정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많은 걸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