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설탕눈이 쌓이면
sputnik.K
2012. 12. 13. 18:36
그 아저씨 참 사람 좋게 생겼었지. 사람 좋게 생겨서는 가끔 내가 앉은 자리 근처에 앉았지만 눈을 마주치는 순간 같은 건 없었다. 다른 테이블 여자들에겐 농담도 곧잘 건네며 실실 웃으면서 내가 스윽 쳐다보면 언제나 책을 보거나 노트북만 두드렸다. 꼭 한번 말을 섞은 적이 있는데 그때 짓는 웃음 보고 하마터면 반할 뻔했다. 어쩐지 그러다 말았다.
여행을 다녀오니 서울에는 함박하니 눈이 와 있다. 내가 없는 사이 눈은 펑펑 내리다 내리다 못해 쌓이고 쌓이길 반복해 길가로 쓰쓱 밀려나 있다. 사람들이 눈을 피해 걸어 다닌다. 나는 올 겨울 첫눈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서울은 눈이 흔한 곳이니까 곧 볼 수 있겠지. 내가 살던 부산은 눈이 흔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눈이 오면 사람들은 눈이 온다 호들갑을 떨며 눈 쌓이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눈만 밟고 다녔다. 설탕처럼 내리는 눈을 보고싶다. 그 눈이 쌓이면 슬슬 다가가 휘휘 저으며 돌아다닐텐데.
사무실이 덥긴 덥네. 갑자기 그 아저씨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머리가 아파서 더 이상 글도 못 쓰겠다. 머리가 지끈거려 아무 말이나 지분거리게 된다. 아, 제주도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