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지구는 사실
sputnik.K
2013. 1. 29. 16:08
아서 밀러의 작품으로 영화와 연극으로 수 없이 무대에 오른 <세일즈맨의 죽음>은 밀러가 대공황 시절 사업 실패로 자살한 자신의 삼촌을 모델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 더스틴 호프만과 존 말코비치가 출연한 영화(1985)가 유명하지만 내가 본 건 알렉스 시갈 감독, 스탠리 아담스 출연의 1966년 작이다. 윌리 로먼이 30년간 일한 와그너 상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급여를 깎아도 좋으니 다시 채용해달라고 고용주를 설득하고 협박하고 궁극에는 독백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는 아내를 생각하며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고생을 했는데 나에겐 더이상 좋은 얘기가 없다."고 말하고,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며 아들들에게 "네 아버지는 지금 항구를 찾는 작은 배 같다."라고 말을 한다. 아버지들의 삶의 무게는 서양이라고 다르지가 않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교 때였다. 아빠가 약주를 한잔하시고 내 방으로 건너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았던 아가가 이 만큼이나 컸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 마음 속엔 여전히 그 작은 아가가 살고 있다. 요즘은 세상의 허무를 이겨내고 지금껏 살아온 어른들이 무척 존경스럽다. 존경이란 말 이외에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지구는 사실 그들이 지켜온 삶의 무게를 중력으로 삼아 지금껏 지탱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