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억의 자리

2013. 12. 14. 02:05 from 외딴방

 

존재의 무게는 부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존재가 떠난 자리에 존재를 되새김질하는 것. 존재는 부재가 되고 부재는 존재가 된다. 그럴 때는 이런 아이러니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구를 재현하며 사는 기분이다.

 

같은 날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봤다. 사랑의 시작과 끝 만큼이나 그것을 기억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기억은 사랑의 과정 중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턱 보조개가 멋진 변호사가 해주는 말이다. "그에 대한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헤어진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원하는대로 그를 기억해요. 어차피 그도 그럴 거예요." 우리들의 사랑은 적어도 어느 한 시점에서는 진짜였다. 이별이 그 사실을 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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