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에는 너무 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보통을 넘어서 지나친 상태를 뜻하는 '너무'라는 부사를 사용하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달이었다.

 

먼저 12월 3일 22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다. 뒤이어 계엄군이 중앙선관위에 진입하고 계엄 선포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상계엄 포고령 공포, 4일 0시 22분 계엄군 국회 본청 출입문 봉쇄, 0시 45분 계엄군 국회 본청 진입, 0시 49분 국회 본회의 개의,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이 순서대로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6시간 만인 4일 4시 20분경 국회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했다. 

 

현지시간으로 12월 7일에는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자 강연이 있었다.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 낭독에서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를 했다. 열두 살 때 본 광주 사진첩에 나온 훼손된 얼굴들과 그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며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라는 중첩되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양감이 다른 이 질문은 지난 12월에도 똑같이 던져졌다. 훼손을 목적으로 한 국가폭력 앞에서 시민들은 피를 나눠주려 줄을 섰던 그날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돌진하는 탱크를 막아섰다. 

 

대한민국의 소란과 위안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사찰음식 수업 고급과정을 수료했다. 계엄령이 내려진 다음 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마지막 수업을 듣고 사람들과 현실감 없는 대화를 나누며 수료증을 받았다. 내친 김에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했지만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비록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엄마와 언니, 조카를 집에 초대해 저녁 한 끼를 사찰음식으로 차려 대접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세 사람은 연신 "맛있다"를 외쳐주었고 그것만으로 긴 배움의 시간에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올해로 건너왔다. 2025년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더 가지런히 채워보려 한다. 새벽요가, 중천산책(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 하는 산책), 틈틈독서를 비롯해 나를 위로해주는 공간에 더 자주 들르고, 음악에 발을 맡겨 수시로 까딱거리는 그런 일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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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람보다 일찍 눈을 떠 유산균을 챙기고 찻물을 끓이고 호밀빵 한 조각을 굽고 책상에 앉아 회의 준비를 하는 그런 아침. 조용한 새벽공기에 균열을 내며 맹렬히 끓어가는 전기포트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오늘은 뭐든 할 수 있는 날이군."

 

어떤 아침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운이 잔뜩 빠져 베갯잇에 고개를 처박고 눈도 뜨지 않고 마음에 차오르는 이상한 감정을 마주하는 그런 아침. 도대체 어디에서 피어오르는 건지 모르겠는 쿰쿰한 감정을 꽉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군."

 

아침에 드는 이런 마음은 꽤 중요하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다. 아침의 기분이 24시간의 표정을 영원히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내 잔에는 그날의 커피가 담긴다. 뜨겁고 향기롭다. 변함 없는 건 그것 뿐이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멱살을 잡고 테이블에 앉혀 깔끔 딜리셔스하게 이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향을 맡고 잔을 손에 감싸쥐고 적당한 온도를 느끼며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는 일. 그래서 다시 잔을 비우는 일. 

 

그러면 왜 어떤 아침은 타령을 이렇게도 길게 했는가 하면, 그런 날도 있고 있고 저런 날도 있지만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영원한 건 말했듯, 내게는 언제나 매일의 뜨거운 커피가 주어지고, 그 한 잔을 맛있게 마실지 말지 결정하는 일 뿐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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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뭉게구름

2024. 11. 10. 00:35 from 외면일기

 

드디어 오징어 숙회를 먹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먹고 싶었는데 의외로 파는 곳이 흔하지 않았던 터라 '오징어통찜'이라는 메뉴를 파는 식당을 찾았을 때는 고성에 가까운 기쁨이 차올랐다. '오징어통찜 제발 드세요'라는 제목의 식당 리뷰 블로그 포스팅까지 보니 신뢰가 더 커졌다. 웨이팅을 걸어야 하는 식당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마침내 입장 순서가 돌아와 기대를 가득 안고 착석하니 직원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오징어통찜을 제외한 모든 메뉴 주문 가능합니다." 

 

나는 아주 잠시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처럼 침묵해야 했다. 저렇게 따뜻한 표정으로 저토록 폭력적인 말을 하다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물어야 했다. 왜죠? "오징어는 이제 끝물입니다. 이번 주에도 딱 한 번 들어왔어요. 더 추워지면 갑오징어 요리로 대체될 겁니다." 나는 갑오징어도 괜찮지만 그건 더 추워졌을 때의 옵션이다. 우리는 홀짝인 물이 미안해서라도 다른 메뉴를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일어서는 우리의 뒤통수에 직원도 미안하다고 외쳤다.

 

알다시피 한번 불지펴진 마음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겨우 노력해 마음을 비우려던 찰나 "동네에 오징어 가게가 있는지 한 번만 찾아봐줄래요?"라는 일행의 말이 들렸다. 별 기대 없이 찾아보는데 별안간 오징어가 들어간 상호가 반짝거리며 눈에 들어왔다. 갑오징어를 파는 집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갑오징어도 괜찮다. 다시 한 번 가슴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올랐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달려갔고 갑오징어 볶음을 주문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계산 후 나오는 길에 직원에게 물었다. 오징어는 언제가 제철이에요?

 

"제철이요? 냉동 쓰는데 제철 그런 게 어디있겠어예." 직원은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지"라고도 덧붙였다. 싱싱한 생물 유통처를 꽉 잡고 있을 것 같던 갑오징어 전문점은 냉동! 냉동!을 외치며 내 배를 부르게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먹고 싶었던 건 오징어 숙회였는데 어쩐지 모든 것이 솔직한 말씀 속에서 다 괜찮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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