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겪어야 할 인생의 경험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고민과 경험은 어릴 때 하지 않으면 70이 넘어서라도 꼭 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퍼즐은 언젠가는 모든 아귀를 맞추는 것이다. 예상치 않은(예상치 않았다는 것만 빼면 평범했던) 일들도 일어나고 나면 그저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것을 긍정하는데 두 계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 긍정하고 나자 일어난 일일 뿐더러 일어날 일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이 나는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내고 싶을 만큼 동경했던 도시로 가 그곳이 내 상상 속 모습 그대로인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곳은 상상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진 않았지만 어느 지점, 그러니까 상상하지 못했던 어느 지점에선 몹시 낭만적이었다. 가령 빵 한 조각과 갈매기의 날개짓이 있는 곳에 그것이 있었다. 나는 낭만을 다시 배운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 일상성을 회복하고 나니 서울에 있는 내 방을 6개월 가까이 비워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가 바뀌었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었다. 열 살 때도 스무 살 때도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로부터 축하를 받았는데 올해는 내가 서른이 된 것에 대해 아무도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무사히 시간의 겹을 입었다. 새해가 밝을 때마다 사람들은 '헌사람에서 새사람이 되는' 일종의 관념 놀이를 지치지도 않고 하는데, 새사람이 된 사람들은 헌사람일 때는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을 계획하며 즐거워한다. 혹자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신을 웃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역시 중독성 있는 일이라 쉽사리 그만둘 수가 없다. 2013년의 얼렁뚱땅함을 익히 체험한데다 개그 욕심도 없는 나는 그저 배우고 싶은 일 몇 가지를 적어보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올해도 일어날 일들은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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