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기사들

2016. 1. 11. 14:52 from 외면일기

 

 

 

미팅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문득 "요즘 택시 기사들은 옷을 다 벗고 영업하는 기분이에요" 하며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요즘은 택시가 어디에 있는지 회사에서 위치 추적이 다 되고, 앞 뒤로는 블랙박스가 있어 사방이 모두 촬영되고 있으며, 택시 내부에는 센서가 작동되고 있어 승객이 승하차할 때마다 체크가 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투명한 시스템이지만 한편으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며 언어 그대로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

 

아저씨는 이야기 도중 뒷자리에 앉은  흘끔 보더니 "우리 여성분에게는 특별히 택시 탈 때 주의할 사항에 대해서도 알려주겠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먼저 택시를 탈 때 번호판 넘버를 외우기 힘들면 트렁크 상단이나 뒷문 손잡이 옆에 크게 적힌 숫자를 외워두면 된다는 팁을 알려줬다. 그 숫자는 서울 시내 대부분의 택시들이 영업 등록을 하면서 받는 짧은 고유번호로, 그 번호만 알고 있으면 웬만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응하기 쉬워진다고 했다. 또 밤에 택시를 탈 때 택시 운전사가 모자를 쓰고 있으면 되도록 타지 말라는 조언도 함께 했다. 모자 착용은 택시 운전사들이 패널티를 받는 항목에 포함되는데,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굳이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모자를 쓰고 운전을 한다면 썩 좋은 케이스로 보긴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그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는 서울의 택시 대수와 그 중 영업 등록이 돼 있는 택시의 수치를 정확하게 덧붙이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 차분하고 명확한 어조를 듣고 있자니 방금 전 미팅에서 내게 정보 전달을 하던 이가 떠올랐다. 마음 먹고 정보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보다 우연히 마주친 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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