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밀크팬을 하나 구입했다. 단골 카페에 원두를 사러 갈 때마다 만져보던 물건이었다.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내게는 이 작고 앙증맞은 팬이 꼭 필요하잖아'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값을 지불했다. 평소 밀크티를 끓이는데 사용하던 냄비는 너무 컸다. 카페 사장님은 내가 산 밀크팬이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지 조용히 설명해줬다. 카페에서도 밀크티를 만들 때 그 팬을 사용한다는 것, 자몽티도 그 팬으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밀크티를 만들 때 찻잎, 우유, 물, 설탕의 양과 타이밍에 대한 레시피도 자세히 알려줬다.
그 날 이후 나의 작은 밀크팬은 거의 매일, 가끔은 하루에 두 번씩 따뜻한 음료를 만들어내며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밀크티, 차이티, 글루바인, 핫초코, 쌍화차까지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낸다. 특히 초콜릿을 직접 녹이는 핫초코를 만들 때가 가장 즐겁다. 우유 170ml에 잘게 부순 초콜릿을 듬뿍 넣고 천천히 저어주면 우유와 초콜릿이 서서히 섞이면서 끓기 시작한다. 우유가 호로록 넘치기 직전에 팬을 들었다 다시 놨다를 반복하며 원하는 만큼 꾸덕꾸덕 끓여 좋아하는 컵에 담아낸다. 시나몬 스틱이나 마시멜로를 곁들여도 기분이 좋아진다.
밀크팬이 생기면서 생활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좋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토록 신나고 유용한 일이다. 나는 나의 작은 팬을 오래도록 즐겁게 사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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