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콧등을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응급실에 가서 다섯 바늘을 꿰맬 만큼 상처가 제법 깊었다. 하필 코를 다쳤다는 사실에 속이 상해 눈물이 줄줄 났다. 사고가 일어나고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서는 '지난밤 콧등이 찢어지는 꿈을 꿨는데 정말 리얼했지'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내 콧등을 더듬거리며 그것이 꿈이 아닌 생시임을 깨달았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일주일을 보내고 난 뒤 병원에 가서 실밥을 제거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부터의 흉터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동안 코 중앙에 두툼한 흉터 치료 테이프를 붙이고 다니자니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3개월 정도 지나자 테이프를 잠시 떼고 있는 상태가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적응력이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나는 나른한 한낮의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쓸데없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과 고민도 시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콧등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존재감을 과시하던 생각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바람대로 시간은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마치 쓸데없는 고민 같은 건 처음부터 거기 없었다는 듯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흉터 없이 피부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라는 나에게 담당 의사는 말했다. "흉터는 남아요. 거의 흔적 없이 회복은 되겠지만 그 자리를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선이 보일 거예요." 나는 다친 자리를 알고 있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지점이 내 눈에는 보인다. 상처는 아물 수 있는 선까지 회복되고 미세한 기록은 어딘가에 남는다. 세상의 이치란 얼굴에도 예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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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