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 부엌에는 크고 늙은 호박 세 덩이가 쌓여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면 호박전 생각이 난다. 그렇게 호박 한 덩이를 반으로 갈라 속을 긁는 작업이 시작됐다. 맛있는 호박전을 먹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한데 호박 속을 긁어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에는 나도 참여했다. 호박을 긁는 손 끝 너머 사각사각 하는 느낌이 전해지자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박의 누렇고 얇은 껍질만 야들하게 남았다. 긁어낸 속은 밀가루나 부침가루와 섞어서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해 구워내면 된다.
쉽게 말했지만 사실 이 굽는 과정에는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열기가 느껴지면 반죽을 동그랗고 얇게 펼친다. 챠르르 소리가 나고 바깥 쪽으로 노르스름한 기운이 올라오면 전을 뒤집는다. 이때 공중 뒤집기를 할 수 있다면 뒤집개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엄마는 내게 뒤집기의 기술을 알려줬다. 공중에 던질 때 힘 조절을 잘못하면 자칫 호박말이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기술이다. 전을 던질 때 '과연 잘 뒤집어질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나 걱정을 안고 있으면 어김없이 전은 반으로 접힌다. 프라이팬 너머로 나의 긴장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소심하게 굴면 굴수록 호박말이가 될 확률만 높아진다. 과감해야 한다. 셰프가 된 기분으로 호박전의 미래 같은 건 염려하지 말고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던져야 한다. 이렇게 두 세 차례 공중 뒤집기를 반복하고 나면 바삭하고 촉촉한 호박전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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