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들을 각각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하고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은 더 좋아합니다. 한번 이야기 해볼까요?
여름.
여름에는 자고로 옥수수를 먹고 낮잠을 자야 합니다. 털복숭아를 깎아 먹는 일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지난 여름에는 언니가 준 털복숭아 하나를 깎아 먹었는데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밤이 되어도 생각이 났습니다. 복숭아는 제가 좋아하는 식감과 맛을 가졌지만 깎는 과정이 귀찮아서 잘 사먹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역시 너무 좋아하는 맛이니까 좋아하는 감정이 게으름을 이기는 순간이 오더군요. 달콤한 과육에 비하면 잔털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그런 깨달음이 있는 여름이었어요. 털복숭아와는 개성이 다르지만 새콤달콤한 천도복숭아 역시 맛있습니다. 껍질을 깎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물에 싹싹 씻어서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뿌꾸빵 뿌꾸빵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먹다 보면 어느덧 복숭아가 끝물이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여름이 다 간 것입니다.
겨울.
날씨가 추워지면 미역장국이 생각납니다. 미역장국은 미역국에 새알을 넣은 음식입니다. 새알이라고 해서 정말 새의 알은 아니고 찹쌀가루를 새알처럼 동글동글 빚은 것을 부르는 말입니다. 진짜 이름은 새알심인데, 경상도에서는 새알이라 부르고 강원도에서는 옹심이라 부른다고 하네요. 새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찹쌀을 불려 방앗간으로 가져가 곱게 갈아옵니다. 거기에 뜨거운 물을 적당히 섞어 되직하게 반죽을 만듭니다. 여기까지 했다면 기초 작업은 끝난 셈입니다. 이후에는 찹쌀 반죽을 손바닥에 적당히 덜어 작고 동그랗게 굴립니다. 열심히 단단하게 굴릴수록 뜨거운 물에 넣어도 풀어지지 않는 예쁜 새알이 됩니다. 다 만들고 모아 보면 정말 새의 알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듬뿍 만들어진 새알을 미역국에 투하해 보글보글 끓이면 맛있는 미역장국이 완성됩니다. 미역장국은 애초에 아빠가 좋아하던 음식인데 저도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나더군요. 겨울이 되니 미역장국을 한 그릇 먹고 싶다 이런 식으로요. 가족끼리 모인 겨울날 한 번씩 먹는데 뜨끈하고 영양가도 많은 음식입니다. 참고로 남는 찹쌀 반죽은 잘 놔뒀다가 부꾸미로 구워먹으면 별미가 됩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반죽을 동그랗고 납작하게 펼쳐 지집니다. 팥 같은 소가 있다면 넣어서 반으로 접어도 되고 그대로 구워내 꿀이나 조청에 찍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찹쌀 반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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