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전후사정 관계치 않고 그 일이 일어났다는 팩트에만 집중하는 것. 두 번째는 이미 일어난 일은 그대로 두고 전후사정에 주목하는 것. 첫 번째 태도는 훌륭한 객관성을 가지고 사건 자체를 냉철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두 번째 태도에선 사건(또는 사람)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친절한 여지가 발현된다.

 

대충의 예를 들어보자면, 마이클 샌델 교수가 물어보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상황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대서양 한복판에서 배가 조난되었고 네 명의 사람만이 살아남아 구명보트에 타게 된다. 그러나 식량도 바닥난 상황이고 물도 없다. 그 중 한 명이 갈증을 참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시다 결국 죽음을 코 앞에 둔 상태로까지 접어든다. 이 상황에서 나머지 세 명은 너무나 배가 고프다. 배고픔으로 아사 직전에 있던 세 명은 죽어가는 이의 인육을 '나눠' 먹기에 이른다. 얼마 뒤 구사일생으로 그들은 구출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에는 네 명이었고 어떻게 해서 세 명만 남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살아난 기쁨도 잠시, 그들은 사람을 먹었다는 죄로 형을 받게 된다. 자, 그들에게는 과연 죄가 있을까? 너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래? 라는 식이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사람을 먹은 것(바로 그 사실)은 잘못된 일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 하나. 사람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전후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 하나.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해나가야 할까. 만약 당신이 그 배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이라면? 인육을 먹지 않았다면 당신 또한 시체가 되었을텐데? 하지만 샌델 교수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지닌 무수한 일들을 정의내리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말한 것처럼, 그러한 질문의 의도는 다수가 생각하는 '옳다'라는 정의에서 벗어나 직면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있었다.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중대한 도덕, 정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내 삶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것.

 

내 삶의 극단적인 선택은 사건을 바라볼 때 첫 번째 태도만을 견지했을 때 일어났다. 일상의 골목골목에 접어들던 사건들에 '왜'가 아닌 '어떻게'라는 견고한 입장을 지지하면서 이해의 폭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왜'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나의 애티튜드를 반성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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