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자유롭길

2021. 9. 17. 22:39 from 외면일기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가슴에 와 닿았다. 인생은 정말 매 순간 선택으로 연결돼 왔다. 내 의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어떤 사건이 쿵쾅대며 일어날 때조차 그 일을 내 인생에 어떤 형태로 안착시킬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건 주변의 찢어진 조각들을 최대한 주워다 다시 복구하려 애쓰기도 하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그 일들은 관계가 끝난 곳에서, 마음이 끝난 곳에서, 언어가 끝난 곳에서 일어났다. 때로는 내가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관계를 만들고, 마음을 부추기고, 언어를 창조했다. 

 

가끔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후회라기보다 상상에 가까운 일이다. 나를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데려갔을지도 모르는 일, 어쩌면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혀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 삶을 지금과는 다른 장소에서 풀어내게 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상상의 끝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언제나 그 모든 것이 모르는 일이라는 것뿐이다. 그건 쏘지 않은 대포 같은 것이다. 쏘지 않은 대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나는 내가 쏜 것이 만들어낸 풍경만을 바라본다. 다른 풍경이 더 좋았을지 나빴을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나의 선택이 나를 더 자유로운 장소 속에 데려다준 것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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