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하다는 건 어떤 말일까. 누군가 내가 한 일이나 결과물에 대해서 "적당하네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음, 아주 훌륭한 건 아니란 거군'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적당하다는 단어는 아주 잘한 것도 그렇다고 부족한 것도 아닌 보통의 상태에 붙여지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안심을 주지만 잘 하고 싶은 일 앞에 그 말이 던져지면 왠지 더 욕심이 날 것도 같다. 그 말이 행동이나 태도의 방향으로써 던져질 때는 어떨까. 누군가가 "적당히 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내 행동이 과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상대는 아마도 내게 조금 더 힘을 빼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때로는 선을 지켜달라는 당부일 수도 있다.

유튜버 밀라논나는 '적당하다'가 참 좋은 단어라고 했다. 그는 "적당히 하라는 건 대충하라는 게 아니라 적합하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강하는 것도 아니지만 과하게 하는 것도 아닌, 정도를 지키면서 알맞게 하는 것. 그러니까 적당히 했다는 말은 적합하게 잘 했다는 말인 것이다. 적합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다. 적당히 하면 체력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일을 규모에 맞게 맺음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은 고달픈 세상을 고단하게 살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내가 적당하다는 말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건, 요즘의 내가 적당하지 못하게 일에 임하고 있어서다. 나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땔감 삼아 스스로를 팔팔 끓여가며 일하고 있다. 열정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열기에 생활이 군데군데 멍 들고 있다. 과거 시간의 틈에 해먹을 걸고 가만히 눕거나 잠을 청하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뭔가에 정면하고 싶은 나만 남은 기분이다. 어느 쪽의 자아가 더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해먹을 매달아 눕는 쪽이다. 적당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디에서든 시간의 틈을 찾아 해먹을 걸 수 있는 힘을 남겨둬야 한다. 나머지 일은 그저 적합하게 하고 싶다고, 알맞게 하는 법을 잊은 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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