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네의 성당

2022. 7. 4. 20:26 from 외면일기

 

 

 

 

우리 동네라고 말하기에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성당이 하나 있다. 봄날 벚나무와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오랫동안 눈이 머물곤 했던 곳이다. 오늘 그곳에 다녀왔다. 예배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성당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있다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긴 책상 아래 얕은 서랍에는 성경책과 찬송가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나는 천천히 나무의자로 걸어가 앉는다. 아침의 예배당은 서늘하고 고요했다.

 

나는 생각했다. 성당 문은 열렸는데 어쩐지 누군가를 향한 내 마음의 문은 도리 없이 닫힌 것 같다고. 예배당에 난 창 너머로 햇살이 비쳐 들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기도할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기도라는 이름 아래 마음을 휘젓는 감정의 행과 열을 맞춰 보려 노력했다. 그것이 어떤 형식의 빎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만족할 만큼 앉아 있다가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성당에 갈 때는 차를 타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걸어서 왔다. 덥고도 먼 길이었다. 나는 확실히 그 길 위에서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기운을 빼낼 필요가 있는 날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며 상기된 얼굴의 열을 식혔다. 씻고 나오자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침대로 가 슬며시 누웠다. 마음이 조금씩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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