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스튜디오

2012. 11. 10. 19:03 from 작은 사건들

 

 

 

 

Scene 1. 여기는 작은 가게이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사진을 인화해주는 곳이다. 음식과 사진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배철수 아저씨가 진행하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저 분은 언제나 한결같다. 라디오 DJ를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단 하루도 지각과 결석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각은 커녕 늘 2시까지 와서 선곡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철저하게 본인이 선곡한 음악만을 내보냈다. 그가 말하길,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 만큼 행복하게 방송을 했다고 한다.

 

 

 

 

Scene 2. 이 집은 샌드위치가 맛있다. 내가 주문한 샌드위치에 들어갈 호박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크랜베리가 들어가는 상큼한 샌드위치로 다시 주문했다. 몇 분 뒤, 샌드위치와 함께 주문한 음식을 못 드려 미안하다며 요거트가 담긴 앙증맞은 그릇을 식탁에 내놓는다. 이 집은 샌드위치가 맛있어, 생각하며 마지막 부분까지 집중해서 먹고 나니 이번에는 친구들이 놀러와서 땄다며 와인 한 잔과 과자를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넙죽 받아서는 난 술을 끊었지 생각하며 홀짝홀짝 마신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막걸리를 건네받은 적이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생각이 나서 구워봤다는 파전과 두 잔의 막걸리가 식탁에 내어졌다.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파는 가게에서 날씨를 핑계로 손님들에게 한 장씩 척척 나눠주는 파전이 참 고소했다. 

 

 

 

 

Scene 3. 이 집은 스튜디오다. 한참 샐러드를 찍어먹고 있는데 회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사진을 찾으러 왔다며 들어왔다. 작은 골방에서 나온 여주인의 손에서 아저씨의 손으로 사진이 건네졌다. 아저씨는 골방 앞에 있는 의자에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사진들을 꺼내놓고 한장 한장 확인한다. 아저씨의 벗겨진 머리에는 하얀 머리칼이 섞여 있고 회색 양복을 입은 뒷모습 위로 노란 조명이 떨어졌다. 골방 근처 어느 지점까지 다른 세계 같았다.

 

 

 

 

 

Scene 4. 올 때마다 풍경이 새겨지는 곳을 한 군데쯤 지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여길 알기 전 이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 비가 오고 난 뒤였다. 택시를 타고 이 앞을 지나면서 어쩐지 그 풍경이 기억에 남아 이런 메모를 해놓았다. '이화 스튜디오 옆에는 페리카나 집이 있다. 페리카나 집에는 불이 켜져 있고 택시에서는 when i fall in love가 흘러 나온다. 어쩐지 훌륭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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