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언어

2015. 7. 18. 11:22 from 외면일기

 

 

 

 

나이가 들수록 즐거워지는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부모님과의 대화이다. 특히, 같은 여자로서 인생을 먼저 산 엄마와의 대화는 더 각별하다. 이야기의 폭은 넓어졌고 엄마의 언어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다. 엄마는 의성어와 의태어 사용 능력이 탁월한데 언니와 나는 그런 엄마의 표현 방식을 좋아한다. 엄마가 만들어낸 의성어와 의태어는 된소리와 거센소리로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녀의 언어는 알 수 없는 벌레에 쏘였을 때 피부에서 오는 반응이라든가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양을 리얼하게 표현한다. 얼마 전에는 입안이 헐어 고생하는 내게 죽염을 권하며 "곧 꺼덕꺼덕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림만 잡다 상처가 다 나을 때 즈음 확실히 '꺼덕꺼덕'해진 입안을 보며 그것이 탁월한 표현이었음을 느꼈다. 엄마는 언니의 신생아 적 사진을 보면서는 "참 뽀얗고 몽실몽실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니 사진 속 아기는 정말 '몽실몽실' 그 자체였다. 산책을 하면서는 골목마다 피어 있는 능소화를 바라보면서 "꽃이 능소능소하게도 피었네"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능소화야말로 '능소능소'하게 피는 꽃이지 않던가.

 

엄마의 언어는 내 안의 어떤 세계를 확장시킨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가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해 더 친밀해진다. 나와 요즘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비슷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엄마나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대화를 해보면 좋아하게 되거든요." 나는 아마 그 말에 반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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