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는 몸이 약한 아이였다. 과일 한 조각 먹는 것도 힘겨웠고 밥맛은 늘 없었으며 밤마다 어지러웠다. 지하철이라도 타야할 때는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늘 앉은 상태에서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야만 이동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엄마가 자주 업어주곤 했다. 엄마는 나를 업고 내가 잠들 때까지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아마 빈혈이었을 것이다. 그맘때 나를 괴롭히던 것의 정체영양제를 달고 살았고 자주 병원과 한약방에 다녔으며 그러한 경로로 나는 약한 아이라는 생각이 정립됐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정립되는 생각들이 있다. 그맘때 정립된 또 한 가지 생각은 밖에서  먹는 음식은 나쁘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돈까스나 짜장면 같은 음식은 물론, 사소한 간식까지도 직접 다 만들어 먹였는데 이유는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은 깨끗하지 못하고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늘 신선하고 영양 만점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패스트푸드나 레토르트 식품의 매력에는 또래에 비해 한참 늦게 눈 떴다. 여하튼 여러 면에서 호강스러운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현기증이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생겼으며 식욕은 왕성해졌다. 자연스레 엄마 등에 업혀 잠들지 않아도 되었다. 빈혈에서 벗어난 것이다. 요즘은 탄탄한 몸과 함께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왕성한 식욕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잘난 척 하며 살고는 있지만 이 삶이 어떻게 별 탈 없이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늘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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