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타이밍에 따라 같은 일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내게는 타이밍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초등학생 때 소풍을 다녀오던 길에 있었던 이야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몸집이 작고 어리던 저학년 시절, 우리 반 아이들은 소풍이 끝나고 학교 운동장에 모여 앉아 해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은 더웠고 내 손에는 빈 과자 봉지 하나가 쥐여 있었다. 마땅히 버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들고 있었던 것인데 순간 바람이 불면서 봉지가 운동장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나는 봉지를 따라가 얼른 주워 왔다.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은 소풍에서 모범을 보인 학생에게 상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내 이름을 호명했다. 알 수 없는 흐름에 깜짝 놀랐지만 일단 이름을 부르니 주춤주춤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아까 운동장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를 주운 착한 어린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실수로 놓치는 바람에 다시 주워 왔을 뿐인데 모범 어린이가 되다니. 선생님은 쓰레기를 줍는 순간의 내 모습만 봤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모범 어린이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품은 노란 스테이플러였다. 나는 견출지에 이름을 크게 써서 스테이플러의 중앙에 붙였다. 이후 노란 스테이플러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내 서랍 속에 자리를 잡고 쉴 새 없이 사용되었다. 나중에 타이밍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자 노란 스테이플러가 바로 타이밍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우연에 의해 특정 순간이 확대되어 나에게 주어진 선물. 타이밍은 개인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시공간의 신비에 기대어 있었다. 나의 노란 스테이플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처음의 샛노란 빛을 잃고 모서리가 닳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명을 다했다. 내게는 이제 노란 스테이플러도 스테이플러가 들어 있던 서랍도 없다. 하지만 소풍날 오후 운동장에서 느꼈던 묘한 감각만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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