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커피

2020. 3. 3. 14:08 from 외면일기

 

 

 

 

집에 와서 좋은 일 중 하나는 아빠의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빠가 내려주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 맛도 좋지만 커피를 끓여내는 아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이 좋다. 아빠가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찬찬히 떠올려 본다.

 

원두 봉투를 열어 향을 맡고 핸드밀에 원두를 세 스쿱 넣어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간다. 드르륵 하고 핸드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공기에도 덩달아 리듬이 생기는 것 같다. 원두를 다 갈고 나면 드립퍼에 필터를 끼우고 원두 가루를 톡톡톡 털어 넣는다. 주전자에 올린 물이 끓으면 포트에 옮겨 담아 온도를 맞춘다. 이윽고 포트에서 직선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원두 머핀이 크게 부풀어 오른다.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아빠는 커피잔을 데우고 자주 머핀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자세히 들어보면 얘네가 퐁, 포오옹 하고 얘기하거든." 그 말에 귀를 갖다 대면 정말 포옹 하는 귀여운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아빠가 드립을 시작하면 서버에 까만물이 내려진다. 커피가 서버에 차면 드립퍼를 내리고 각자의 잔에 알맞게 부어준다. 우리는 잔을 손에 쥐고 향을 맡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하고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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