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뜨개질반 활동을 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딱히 뜨개질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주중에 하루, 한 시간 주어지는 특별활동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특별활동 시간이 되면 반을 옮겨야 했는데 1반, 2반이 아닌 뜨개질반으로 약속된 교실을 찾아가야 했다. 거기에서 자리를 찾아 앉고 가방에서 동그랗게 정리된 뜨개실과 은색으로 빛나는 가늘고 기다란 코바늘을 꺼낸다. 준비물은 그게 다다.
한 시간 동안 배운대로 실을 매듭 지으며 뜨개질을 했다. 나는 문방구에서 산 핫핑크 뜨개실을 꺼내 열심히 일자코를 뜬다. 그런데 어쩐지 그 이상의 발전은 없다. 코는 돌아올 줄 모르고 언제까지 앞으로만 나아간다. 특별활동 시간이 끝나면 실과 바늘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었다가 다음 시간이 되면 그대로 다시 꺼내 앞으로 앞으로 코를 꿰어 나간다. 가끔씩 이 장면이 맥락도 없이 눈 앞에 두둥실 떠오른다. 시간은 오후 무렵이고 나는 교실 창가 책상에 앉아 성실하게 코를 꿰고 있다. 내 코는 후회도 반성도 없이 직진만 하는 중이다. 말도 없고 소음도 없는 순간들이 코 사이사이에 같이 꿰어 들어가는데 사실은 그때마다 마음 속에서는 뭔가 푸드덕거리는 기척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다 크고 나서는 한 코만 꿰는 방법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뜨개질을 새롭게 배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아갔다면 돌아오기도 해야지. 중간중간 꽃밭도 만들어야지. 푸드덕거리는 기척을 잘 듣고 코 사이사이에 꿰어 넣어야지. 많은 것에 자기 자리를 찾아줘야지. 그게 뜨개질이지. 내가 뜨개질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는 취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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