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빈 화분이 많다. 그곳에서 자라던 싱싱한 식물들은 나의 관심 부재에 다들 혀를 끌끌차며 종국에는 고개를 숙이고 떠나갔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식물을 잘 키운다는 건 무심하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는 엄마와 언니가 식물을 잘 키운다. 관찰해 본 결과, 그들은 식물에 물만 주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에 햇빛에 내어놓으며 말도 걸어준다. 어릴 때 엄마가 화분에 노란 영양제를 꽂아둔 모습을 보며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왜 이런 걸 주나 생각했다. 몇 번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그래야 잘 자라니까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하튼 확실히 그들은 식물을 돌보듯 나를 잘 돌봐줬다. 아니면 나를 돌보듯 식물을 잘 돌봐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로 유명한 그 시 말이다. 마지막 연을 제외한 1~3연의 첫 행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면 분명 그에게로 가서 한 송이의 꽃이 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그가 내게 와서 꽃이 되었는데 관심이 부족해 말라 죽게 하면 어쩌지? 그 어린 날 본 것처럼 노란 영양제라도 꽂아놔야 하는 걸까? 라고 말하면 엄마는 특유의 웃음을 날리며 물이나 제때 주고 가끔 말이나 걸어주라고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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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